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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권리
지은이 : 폴 라파르그 | 옮긴이 : 차영준
정가 : 8000원
ISBN 978-89-91071-66-7
페이지수 : 216쪽
출판일 : 2009-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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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던 폴 라파르그의 대표적인 글 7편을 묶었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로의 세기전환기에 유럽의 혁명적 지식인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그 시대 정신적 풍경의 한 단면과 같다. 표제작인 <게으를 권리>는 ‘일할 권리를 앞세우는 주장에 대한 반박’이라는 풍자적인 형식으로 노동자의 삶을 억압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글이다.

 

 

 

 

소개글 

 

이 책의 표제작인 <게으를 권리>는 1883년에 발표된 뒤로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짧은 시간 안에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어 읽혔다고 한다. 이는 그 풍자적이고 역설적인 제목이 흥미를 유발하는 작용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이보다는 그 내용이 노동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당대의 예민한 부분을 날카롭게 건드렸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이삼십 년 뒤인 20세기 초부터는 이 글이 그다지 중요하게 거론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거의 망각되다시피 했고, 이 글에 대한 이런 홀대는 자본주의권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주의권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글의 주제와 논조 자체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이 글의 주제는 ‘노동의 권리’라는 이름 아래 노동을 신성화하는 모든 흐름을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사회주의자였으므로 주로 자본주의 사회의 무자비한 노동착취를 주로 겨냥해 이 글을 쓰긴 했지만, 그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자본가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에 못지않게 노동을 신성화하는 관점을 ‘노동의 권리’로 내면화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노동자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시작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점차 원래의 국제적인 성격을 잃고 국가적인 성격을 강화해가면서 사회주의권에서도 국가경제가 중시되고 체제경쟁의 압박이 노동의 강화로 이어진 것이 20세기의 역사적 현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생산이 강조되고 노동이 신성화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생산제일주의와 노동의 교리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게으를 권리>와 같은 글은 이단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에 이 글이 홀대를 받은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또 다르다. 1990년대에 옛 소련 등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이후로 체제경쟁은 사라졌고, 생산제일주의와 노동의 교리가 그 어느 때보다 맹위를 떨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고 어떤 면에서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러한 지금의 상황에서 <게으를 권리>가 점점 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그 관심의 방향과 내용은 이 글이 발표됐던 100여 년 전과 다소 다른 것 같다. 자본주의적 노동착취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긴 하지만 이 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자기실현과는 동떨어진 소외된 노동, 돈을 벌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 힘든 경제적 현실, 개인간 경쟁과 과로를 부추기는 시장주의 문화 등에 짓눌린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리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게으를 권리>와 함께 철학적, 언어학적, 인류학적 분석을 통해 인간의 두뇌에 형성돼있는 개념의 본질에 대해 논의한 <추상적 개념의 기원>,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유래와 아테나와 관련된 신화의 의미를 따져본 <아테나 신화>, 자신의 장인이자 열정적인 학자였던 마르크스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서술한 <마르크스에 대한 회상>, 자본주의 체제에서 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노동자의 처지를 냉소적으로 묘사한 <말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 지식인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논의한 <사회주의와 지식인>, 여성의 능력과 지위에 관한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대안의 관점을 제시한 <여성문제> 등 모두 7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들 글은 1883~1904년에 집필된 것들이다.

 

 

 

지은이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_ 프랑스의 사회주의 운동 지도자. 1842년에 쿠바에서 혼혈인으로 태어났지만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의과대학을 나와 잠시 의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일생 동안 주로 사회주의 정치활동에 헌신했다. 1865년부터 5년간 런던에 체류하면서 마르크스의 집을 자주 방문했고, 1868년에 마르크스의 둘째 딸인 라우라 마르크스와 결혼했다. 그 뒤로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파 지도부를 구축하는 활동을 벌였고, 1879년에 설립된 프랑스 노동자당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활발한 정치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투옥됐으며, 1891년에는 경찰의 감시를 받는 처지에서도 릴 지역에서 프랑스 하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69세인 1911년에 아내와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차영준_ 한국외국어대학의 영어대학과 통번역대학원 강사. 서울대학 노어노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학 통번역대학원 한영과를 거쳐 통번역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번역서로 《MIT 경영의 미래》, 《100% 인생을 사는 긍정의 힘》, 《IIT 사람들》, 《맨헌트》 등이 있다.

 

 

 

 

차례

 

1. 게으를 권리

2. 추상적 개념의 기원

3. 마르크스에 대한 회상

4. 아테나 신화

5. 말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

6. 사회주의와 지식인

7. 여성문제

 


 

책속에서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는 국가의 노동자들은 기묘한 환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여러 세기에 걸쳐 불쌍한 인류를 괴롭혀온 개인적, 사회적 재앙을 줄줄이 몰고 다니는 환각이다. 그것은 일에 대한 애착 또는 노동에 대한 처절한 열정인데 각 개인과 그 후손의 생명력을 고갈시킬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직자와 경제학자와 도덕가들은 이러한 정신적 이상상태에 반대하기는커녕 노동에 거룩한 후광을 씌웠다. (9쪽)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이런 말만 되풀이한다. “일하라. 사회의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그러나 역시 경제학자인 데스튀트 드 트라시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곳은 가난한 나라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드 트라시의 제자인 셰르뷜리에는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들은 생산자본의 축적에 협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임금 가운데 일부를 빼앗기는 상황을 자초한다.” (20쪽)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의 양은 제품 소비와 원자재 공급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제한된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찌하여 1년 치의 일을 6개월 만에 미친 듯이 해야 하는가? 6개월 동안 하루에 12시간이나 일하는 대신에 1년 내내 노동량을 골고루 분산시켜 모든 노동자가 하루에 대여섯 시간만 일하게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노동자들이 매일매일의 일거리를 보장받게 된다면 더 이상 서로를 시샘하지도, 서로에게서 일거리나 먹을 것을 빼앗지도 않을 것이고, 심신이 기진맥진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게으름이라는 미덕을 실천하기 시작할 것이다. (38쪽)


노동계급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자신들의 본성을 타락시키는 악덕을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근절시키고 스스로 막강한 세력으로 등장해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당할 권리에 불과한 ‘인간의 권리’나 비참해질 권리에 불과한 ‘일할 권리’를 요구하기보다는 누구에게도 1일 3시간 이상의 노동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로 결단을 내린다면 지구는, 이 오래된 지구는 자기 안에서 새로운 우주가 생겨나는 개벽의 기쁨으로 몸을 떨게 될 것이다. (48쪽)


18세기의 감각론자들은 인간의 두뇌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백지상태)’라고 주장하면서 데카르트의 정화론(淨化論)을 급진적인 방식으로 부활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들은 지극히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즉 문명인의 뇌는 수백 년 동안 경작된 ‘밭’과 같고 거기에 수천 세대에 걸쳐 생각과 개념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사실, 라이프니츠의 정확한 표현에 따르면 문명인의 뇌는 개별적 경험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했다. 우리는 뇌의 분자배열 자체가 수많은 관념과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돼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74~75쪽)


학자 마르크스의 심장이 뛰는 가슴속을 알고 사랑하게 되려면 그가 책과 공책을 덮고 가족들에 둘러싸여 있거나 일요일 저녁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어야 한다. 그런 자리에서 마르크스는 유머와 기지로 가득 찬 지극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그는 곧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재치 있는 말이나 적절한 대꾸를 듣게 되면 그때마다 숱이 무성한 눈썹 밑에 자리 잡은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기쁨과 장난기가 섞인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110쪽)


근본적으로 아테나는 부모 없이 스스로 태어난 고대의 신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아테나를 섬기는 미개인들이 가모장제 사회를 만들 정도로 발전하자 숭배자들이 아테나에게 어머니의 성격을 부여하고 그러한 의미를 가진 다양한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게 됐다. 그런데 지상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천상에서도 남성이 가족을 지배하게 되자 아테나는 제우스의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신들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제우스는 아이를 입양할 때 시행되는 관습에 따라 아테나를 마치 자기가 낳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의식을 치렀던 것이다. 헤라는 헤라클레스를 입양하고자 침실로 가서 아이를 자기 옷 속에 숨긴 뒤에 자연스럽게 분만하는 듯이 아이를 떨어뜨렸다. (143쪽)


망아지는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어미 말의 뱃속에서부터 존재의 권리를 만끽한다. 어미 말은 임신하자마자 일체의 노동에서 벗어나 농촌으로 보내져 평화롭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새끼를 출산한다. 그러고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새끼가 다 자랄 때까지 마음껏 뛰놀 목초지에서 맛있는 풀을 고르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새끼 곁에 머문다.
‘인권’을 숭상하는 도덕가와 정치인들은 노동자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여성에게는 분만 전후의 2개월 동안 공장에서 일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인정하고 생계수단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의회에서 대소동이 일어났다. 내 제안이 문명의 윤리체계를 어지럽히고 자본주의의 질서를 흔드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인간의 아기에게 망아지의 권리를 부여하자고 요구하다니 그 얼마나 구역질나는 주장인가 하는 반응이었다. (148쪽)


프랑스에서는 1789년부터 지극히 다양하고 상반되는 성격의 정부들이 꼬리를 물고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지식인들은 그때마다 아무런 주저 없이 서둘러 정부에 헌신적으로 봉사했습니다. 언론계, 의회, 경제계에 널려있는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지식인들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과학자, 대학교수, 학술원 회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가운데 고개를 높이 쳐들고 있는 자일수록 무릎은 더 낮게 꿇고 있었습니다.
학계의 대가들은 왕이나 황제와 대등하게 대화를 나눠야 함에도 임기가 정해진 장관에게서 공직과 특권을 사려고 명예를 팔아치웠습니다. (168쪽)


자본가들은 상공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에서 감독과 경영을 하는 일을 지식인들에게 맡기고 상당한 보수를 지급합니다. 산업과 정치 분야의 지식인들은 임금노동자계급 가운데 특권층으로서 자기들 스스로는 자본가계급과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껏해야 자본가의 하인일 따름입니다. 그들은 노동자계급을 최악의 적으로 보고, 언제나 노동자계급에 맞서 자본가를 방어해줍니다. (177쪽)


자본주의가 여성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해서 사회적 생산에 투입한 이유는 여성을 해방시키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성을 착취하는 것보다 더 심하게 여성을 착취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여성을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가둘 목적으로 구축된 경제적, 법적, 정치적, 윤리적 장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여성은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비참한 삶도 감내해야 하지만 과거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족쇄도 감내해야 한다. 이로 인해 여성의 경제적 비참함은 더욱 심해진다. (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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